그는 신이라고 불렸다. 이따금 찾아들어 인사하듯이 그가 머무르는 방의 창문을 두어 번 부리로 두드리고 가는 까마귀들을 제외하면 그 자체로는 흠잡을 곳이 없는 동거인이었다.
타카미는 어디에서든지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다는 듯이 녹아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한때 어느 극단에서 일했다던 그는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사람을 상대하는 기술이 몸에 배인 듯 했다. 그는 상냥하게 미소 짓는 법과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거는 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와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나누어본 이들은 금세 그를 향해 호감을 드러냈으며, 그 자신역시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처신했다. 그가 타인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부분들을 포함하여, 그가 지니고 있는 다양한 면모들 모두 아울러 단언할 수 있는 것은 그토록 침착하면서도 자신감에 찬 채 스스로의 힘을 믿는 이를 보기란 드물리라는 점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 향기는 이맘때쯤 언제나 맡아오던 꽃의 잔향에 불과했다. 그 순간, 저 너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신의 잿빛 눈동자는 울타리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자연스레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발등으로 떨어졌다. 미지근한 바람을 타고 부드러운 향내가 건너온다. 그는 이 향기를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맡은 적이 있었으므로 어떤 꽃의 것인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 그녀를 마주보았을 때 그는 이 향기의 주인이 그녀일 것이라 확신하고 말았다.
“맨발이라서 이렇게 보시는 건가요?”
그녀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신은 뒤늦은 자각이 들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아름다운 목소리다. 그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가까스로 힘이 풀린 손가락에서 책을 떨어뜨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오감을 믿을 수 없어서 그녀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고, 꽃향기를 품은 바람이 한차례 불어왔다. 검은 머리카락이 나부끼는 사이로 이따금 드러나던 희고 작은 귀는 한 장의 꽃잎이 그러하듯이 사랑스러운 것이었다. 연한 분홍빛의 장미 꽃잎들이 이지러지고 그는 단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 향기의 주인은 저 아름다운 피조물이다. 그녀는 천천히 명랑하게 웃었다. 꽃과도 같은 미소에 그는 건네려던 상투적인 인사 한두마디조차 전부 잊었다. 그녀는 그의 무례한 태도에 불구하고, 그를 기다려주기라도 하는 듯이 웃고 있었다. 마치 그 자신이 만개한 장미인 것처럼.
그는 사랑에 빠진 한 남자가 되었다. 그의 고통은 바로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가, 이윽고 매듭이 풀리는 것처럼 부드럽게 웃는 얼굴이 되었다. 깊고 고요한 눈동자. 그 붉은 눈동자는 그 누구보다도 다정한 빛을 띄운 채 사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와 시선을 맞추고 있노라면 두 팔 가득 한무리의 나비 떼가 날아드는 기분이었다. 물결이 일 듯 마음이 일렁였지만, 그녀는 두 눈을 뗄 수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이 그녀의 두 눈과 두 발목을 휘감고 놓아주지 않았다.
“손님에게 춤 한곡도 추지 않고 가게하는건, 명망있는 이로서의 예의가 아니지 않을까?”
아름다운 것을 저 별에 새겨 기억하고 싶어요.
아름다운 것을 별에 새기지 말아. 손에 닿을 듯이 빛나도 결국 닿지 않거든.
그는 잠시 침묵하다 덧붙였다. 새기려거든, 네 마음에 새기렴.
당신을 제 마음에 새길게요.
“가야 해요, 그 사람이 절 필요로 하고 있어요.”
“그가 그렇게 말하던가.”
“아니요. 하지만 그는 입을 열지 않고도 내게 그의 바람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전 알아요.”
신은 침묵한다. 사키는 그를 달래는 것처럼, 그녀 자신을 설득하는 것처럼 덧붙였다.
“이런게 바로 연인이라는거잖아요.”
그는 참을 수 없어서 한마디 쏘아붙였다. 어디까지나 냉정과 평온을 가장하고서.
“혹은 노예일지도 모르지.”
그는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은 것인지 깨달았다. 황급히 눈 앞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표정이 지워진 그녀의 얼굴이 모욕감으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가 점차 핏기를 잃고 새하얗게 질려가는 것이 보였다. 사키는 더 이상 그에게 어떠한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를 바라보며 지긋이 입술을 깨물었다가, 등을 돌리고 그녀의 안채를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을 뿐이다. 신은 붙잡을 수 없었다. 그는 그저 그 자리에 오랫동안 서서 그녀가 사라진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흔들리지 않도록 총을 바로 잡고 시선은 목표물에 고정한다. 지금 이 순간이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신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사랑에 빠진 이의 달음박질은 방아쇠를 당길 틈조차 내어주지 않았다.